상실의 기록

1 2018.04.10 23:17


 식음을 전폐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입맛이 없었다. 무엇이라도 입에 대려하면 자꾸만 죄책감과 자책감이 합심하여 나를 괴롭혔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원혼이 형태가 되어 찾아와선 나를 책망하는 듯했다. 그렇게까지 살아있고 싶으신가요, 제가 없는 이 세계에서, 이 더러운 세계에서, 그렇게까지. 그래서 무엇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는 며칠까지 버틸 수 있을까를 시험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러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이또한 그저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밖을 내다보면 하늘은 노을빛인데 내가 그걸 견디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망가져가는 걸 처음 본 게 신사쿠였다. 내가 말라 비틀어진 채 눈만 간신히 뜨고 있을 때였다. 신사쿠는 나의 몰골을 보고 과장스레 얼굴을 찡그리더니 죽을 쒀 갖고 왔다. 먹기는 했지만 맛이 없었다. 역했다. 욕지기가 났다. 속에 있는 걸 모두 게워내고 싶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며칠을 굶어놓고서 갑자기 뭔가를 먹는다고 몸이 제대로 받아낼 리가 없다. 성의를 봐서, 그의 걱정을 생각해서 계속 먹기는 했으나 그냥 안 먹고 쓰러져 눈 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정신이 없었다. 신사쿠가 야, 너, 등으로 시작하는 말을 해대는 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번에는 내 귀에 대고 검은 기운이 속삭이고 있었다. 왜 그런 짓을 하려 했냐. 지금의 너를 봐라. 너는 다 잃어가고 있지 않냐. 네 옆에 남은 사람은 그저 심성이 좋을 뿐이다. 네게 그 호의를 받을 자격은 있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뭐? 뭐가 아니라는 거야. 방에서 좀 나오라니까.

 아니요, 아니요. 아닙니다.

 신사쿠는 당황하는 듯했다. 거기에 반응할 여유는 없었다. 신사쿠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도 않았고, 그저 그 검은 기운이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으므로. 먹던 것을 내려놓고 입을 다물었다. 신사쿠는 황당한 표정이 되어 나를 보았다.

 야, 왜 다 안 먹고

 이만 나가 주세요.

 뭐? ……너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나가 주세요.

 며칠간 영양 섭취도 제대로 하지 못해 내 힘은 분명 약해졌을 텐데, 신사쿠를 방 안에서 몰아낼 힘 만큼은 남아있었다. 방문을 닫았을 때도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신사쿠를 내보내느라 그대로 남아버린 죽 그릇이 보였다. 벽면으로 치워뒀다. 제대로 된 외면이었다. 나는 더 외면하지 않을 것을 마주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것을 외면해야 했다. 검은 기운이 내게 했던 말대로. 그러자 나에게 칭찬이 돌아왔다. 잘했다. 그런 식으로 인연을 끊어내는 거다.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기운이 이제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래. 나를 걱정하는 사람마저 끊어낼 것이다.

 이 허무하고 허탈한 결심은 내게 무엇도 남기지 못한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조차 학습으로 알아냈으므로 실로 겪으면 다를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헛웃음을 웃었다. 애초에 나에게 오는 걱정도 관심도 전부 내 것이 아니므로 그로써 위안했다. 내게는 자격이 없는 게 맞았다.



 이 나의 모든 원인엔 그녀가 있었다. 태양의 무녀. 죽어버린 태양의 무녀. 고의 나라의 의식에서 그녀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가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떠나기를 택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럴 수는, 있다. 문제는 태양의 무녀의 자리를 포기한 그녀가 민간인에 불과했다는 데에 있었다. 그녀는 식신의 습격에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민간인인 그녀가 행방불명된 이상 그것은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불쌍한 사람. 그녀는 기회를 잃고 삶까지 잃었다.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이 죽고 내가 살다니.

 그들은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 하지만 태양을 띄운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이상, 슬픔에 빠진 채로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죽음을 딛고 일어섰다. 나를 제외하고서, 모두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가졌다. 비극은 나는 그럴 수 없었다는 데서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죽음을 딛고 일어서지 못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도 가지지 못했다. 나는 늘 이 세계가 더럽다 여겼으며, 그렇기에 스사노오의 손을 잡았고, 태양의 무녀를 속여 스사노오의 명을 따르면 되는 거였는데. 그녀가 태양의 무녀의 자리를 포기하고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 이상 나 또한 바다의 무격으로 있을 수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승님이 죽었을 때는, 어떻게든 증오라도 하며 삶을 이어나갔으나, 여기엔 증오의 대상이 없었다. 찾는다면 나였다. 나를 증오해야 했다. 나를 증오하면, 살아갈 수 있는가.

 다음 대의 태양의 무녀를 찾아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나의 육체가 무너져내리지 않는 대신 나의 정신이 무너져내렸다. 어떻게 쉽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은 태양을 띄우리란 목적이 있다. 나는 목적이 없다. 세계를 증오한다. 세계를 없앤다. 그러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세계는 무너질 것이다. 나를 지탱할 수 없는 나를, 그런 나를 증오하며 어찌 제대로 나아갈 수 있는가. 나는 이제 그들과 동행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세이메이.

 그 목소리가 문제였다. 신사쿠나 다른 수호자들이나 이나바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가 서로 겹쳤다. 환청까지 들렸다.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스승님까지도 내 이름을 불렀다.

 세이메이 씨.

 세이메이.

 미칠 것 같았다. 그때부터 모든 게 멈췄다. 환영도 환청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검은 기운은, 스사노오도 아닌 그건 대체 뭔지 모르겠으나, 절대자래도 믿을 듯 내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어서 나는 도망칠 수도 없는 채로, 정체되어 있을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속이 메스껍다. 억지로 먹었던 게 문제였나 생각했다. 한쪽 벽면에 치워버린 그릇을 봤다. 담긴 내용물은 이미 식었을 것이다. 보고 있자니 그냥 속에 있는 모든 걸 토해내고 싶었다. 억지로 토해내려고 해봤자 헛구역질이 날 뿐인 것들까지 모두 토해내고 나면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이건 착각일까. 착각이 아니면 좋겠다. 정말 속이 편해지면 좋겠다. 하지만 속이 좋아진다해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지 않나.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상황까지 온 거였지.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치채지 못한 새에 온 모양이었다. 내가 있는 방의 문을 왜 열려고 하는 걸까. 나는 이제 이 꼴인데. 내비출 게 이런 모습밖에 남지 않았는데 왜. 내버려 두세요. 외쳤다. 내버려 두세요. 쇳소리가 났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들어온 건 신사쿠였다. 문 너머로 사람이 더 있었으나 들어온 건 신사쿠뿐이었다. 여기까지 사람을 끌고 온 건 신사쿠였나. 그럴 줄 알았다. 힘이 빠졌다.

 세이메이. 얘기 좀 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습니까.

 목소리는 볼품없었다. 잔뜩 가라앉아서 목소리가 나오는 게 용할 정도였다. 신사쿠의 얼굴을 구태여 보지 않았으므로 그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날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너 왜 그러는 거냐?

 뭐가 말이죠.

 왜, 왜 그렇게 틀어박혀 있냐고. 스승님도, 아카리도 너 이러는 걸 바라진 않을 텐데 자꾸 그러면.

 뭐라고요?

 이런 말을 들어야 하다니. 다시 몰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까 낸 힘이 한계였는지, 대꾸하는 것말고는 할 수 없었다. 그만한 힘도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심한 꼴이었다. 끊어낼 힘조차 남지 않은 이런 나를 왜. 원망을 갖고 신사쿠를 쳐다봤다. 놀랐다.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사람 걱정하게 하고 말이야. 왜 아무 것도 안 먹고 틀어박혀 있는거냐고. 아 씨, 이따위로 말하면 안 되는데.

 신사쿠는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끊어내기로 한 친절을 안고 왔다. 대체 왜. 그래도. 그래도, 그녀의 죽음을 겪고 왜 나를 걱정하는 걸까.

 신사쿠. 당신은 나를 걱정하죠?

 당연한 걸 묻냐.

 무엇이 당연한 것인지를 모르겠다.

 왜요?

 아니, 왜냐니……. 당연히 너는, 그.

 아카리 님이 죽었는데 절 걱정하나요?

 그 순간이었다. 신사쿠의 얼굴이 굳었다. 신사쿠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녀는 츠쿠요미의 축복을 받지도 않았으며 또한, 태양의 무녀라는 지위를 포기했으므로 행방불명은 사실상의 죽음일텐데. 신사쿠의 얼굴은 갈수록 일그러져 갔다.

 무슨 말이야. 아카리가 죽었다고?

 당신이야 말로 무슨 말입니까. 아카리 님은,

 너 다른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 수 있어?

 신사쿠의 말에는 격한 감정이 들어 있었다. 왜 이런 반응일까. 정작 그녀가 죽었을 때는 가장 먼저 받아들였으면서. 난생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반응하는 걸까.

 제대로 말 해, 세이메이. 그거 무슨 의미야.

 무녀님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다 식신의 습격을 받고,

 무슨 말이냐고! 아카리는 원래 세계로 멀쩡히 돌아갔잖아!

 예……?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듯, 내 모든 생각이 정지해가는 듯했다. 그녀가, 살아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갔다고. 죽지 않았다고. 식신의 습격조차 받지 않았다고. 그녀가 죽어서 내가 이렇게 됐는데, 그녀는 원래의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무슨 말입니까.

 너야말로 무슨 말 하냐고 물었잖냐. 대답해.

 아카리 님이 살아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녀가 죽지 않았는데 여기 없다고. 정말로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갔다고.

 멍했다. 뭔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신사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겹쳤다. 세이메이. 세이메이! 그런데도 깨지 않았다. 왜. 난 깨어날 수 없었다. 정말로 속에 있는 걸 모두 토해내 볼까. 그러면, 그러면 괜찮아질까. 괜찮아질까. 애초에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나는 무엇때문에 상실감에 빠져있었던가.

 그녀가 죽지 않았고 나도 살아있는 것이 왜 비극인가.

 그래. 나는, 울었다. 왜. 나는 울었다.

 검은 기운이 속삭였다. 너는 너 자신에게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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